[중대신문] 나는 을이다, 고로 입을 다문다

관리자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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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사장과 노동자 사이에도 평등한 관계가 성립할까? 특히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청년들이 주로 종사하는 아르바이트(알바) 업계에서는 더욱 평등하지 않은 위계질서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청년 알바노동자는 다양한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고 권리를 침해당한다. 기울어진 노동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제도적 개선점을 논의해 봤다.

청년 알바노동자의 할말하않

알바와 청년은 뗄 수 없다. 특히 생활비와 학비 등 지출이 큰 대학생은 학업을 위해 알바를 하는 것이 필수다. 채용포털 알바몬의 조사에서 2016년 약 41%, 2017년 약 51.4%, 2018년 약 65.9%의 대학생이 항상 알바를 한다고 응답했다. 수치도 높을 뿐더러 매년 10%p 이상의 큰 폭으로 수치가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채용포털 알바천국이 대학생 1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1.6%가 대학가 알바를 구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많은 청년과 대학생이 알바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알바노동자는 어떠한 현실에 처해 있을까.

중대신문이 만 19세에서 29세 청년 1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알바 중 불합리한 경험을 한 학생은 약 75%로 나타났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학생은 전체 응답자의 약 27.42%, 주휴수당과 야간수당 등 수당의 미지급을 경험한 학생은 약 31.45%, 초과근로와 계약 조건을 벗어난 요구 등 업주의 과도한 요구를 경험한 학생은 약 26.61%였다.

청년 알바노동자는 전체 노동자 중 젊은 축에 속한다. 또한 알바라는 고용 특성상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으며, 「근로기준법」 이 일부만 적용되는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단시간노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어린 나이와 불안정 고용, 피고용인이라는 여러 특성들이 중첩되어 청년 알바노동자의 현실은 권리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다.

입막음 된 을

그러나 중대신문 설문조사 결과 불합리한 경험을 한 청년 중 약 70.97%가 이러한 불합리한 경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답한 A씨는 “알바를 그만둔다고 사전에 고지했음에도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 일해달라는 요구로 계속 출근했다”며 “익월 중순에 임금을 받기 때문에 함부로 그만두면 문제가 생길까 우려가 돼 사전고지한 날짜보다 더 근무해야 했다”고 말했다. 최경은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4)은 “음료와 음식 제조를 하는 내용으로 계약했으나 사장이 담배 심부름이나 불필요한 외부 만남을 원했다”며 “80만원 정도의 임금이 체불됐는데 사장이 업무 이외의 사적인 만남을 조건으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요구해 결국 아직 12만 2000원은 못 받은 상태”라고 알바노동자의 현실을 전했다.

주서영 학생(사회학과 2)은 “손님이 없으면 계약된 시간보다 일찍 퇴근하게 되는 것과 법정 휴게시간을 지키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나 돈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가 을이라고 느껴져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알바 상황 중 겪는 다양한 부조리에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로 청년들은 갑인 사용자에게. 불합리함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김영채 학생(체육교육과 3)은 “알바 시장에는 나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넘치기 때문에 괜히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가 해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노동시장에서는 갑을 관계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병훈 교수(사회학과)는 “어느 사업장에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며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의존하고 종속되는 을의 위치에 서기 쉽다”고 밝혔다. 이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는 비대칭적인 교환 관계가 형성되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덧붙였다. 정현철 사단법인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노동자가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용자에게 얘기하면 사용자가 그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며 갑을관계를 이용해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며 “노동자는 생계 때문에 참고 견디게 되는 악순환이 실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알바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미흡해 알바노동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위계질서에서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홍종민 알바연대 대변인은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 간 형성되는 위계질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노동조합”이라며 “그러나 알바노동자 대부분은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위계관계가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나이에 의해 위계질서가 심화되기도 한다. 홍종민 대변인은 “대개 사용자가 알바노동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 있다”며 “사용자와 노동자의 나이 차이에서도 위계관계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노동자의 시소에 추를 달아야

노동자와 사용자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근로기준법」 등의 노동관계법은 산업 혁명 이후 착취 대상이 되었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성·발전돼 왔다고 밝혔다. 경제적·사회적 약자 지위에 있는 노동자는 사용자와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의 형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노동관계법을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고 노동기본권 보장을 통한 노사대등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사용자에 의해 노동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국가가 법적 장치를 통해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알바노동자는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사용자의 눈치를 봐야 할까. 법적 사회안전망에 빈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4인 이하 사업장은 법적 보장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제한돼 있다. 이로 인해 4인 이하 사업장에는 법정근로 시간(1주 40시간, 1일 8시간), 연장근로의 제한 및 수당 지급, 연차유급휴가, 부당해고금지 규정 등 근로조건의 핵심적 조항들이 적용되지 못한다.

그러나 통계청 ‘전국 규모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2019년)’ 자료에 따르면 4인 이하 사업장의 수는 전체 사업장의 약 61%를 차지하고 있으며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는 전체 근로자 수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다. 약 5명 중 1명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년들은 입 모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대기업에서는 철저하게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 반면, 적용되지 않는 4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빈번하게 노동자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최경은 학생은 “대기업인 물류 업체 쿠팡 같은 경우에는 주휴수당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켜준다”며 “개인 사업장이나 소규모 사업장은 거의 지켜주지 않는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는 점에서 지난 2008년 이미 인권위는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정현철 사무국장은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위해 근로기준법이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에게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에 대한 법적 공백도 존재한다. 하루에 2~3시간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나 주 1~2일 등 일부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 수가 2010년 전후로 급증했으며 현재도 증가추세다. 단시간 근로자 중에서 월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 또는 주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초단시간 근로자)는 사회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 주휴·연차 휴가 제공, 무기계약 전환 등의 법적 보호에서 제외돼 있다.

숭고한 노동, 존중이 필요


청년과 전문가는 알바노동자의 권리 제고와 보호를 위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정현철 사무국장은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천대에서 존중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희원 학생(홍익대 경영학부)은 “정책적 노력에 더해 알바노동자의 노고를 알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 대중에게 많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알바노동자와 그가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알바노동자를 존중하게 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종민 대변인은 “알바노동자와 노동자를 구분해 사고하는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알바를 하는 사람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알바생이 아닌 알바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부분이 근로자 지위에 있는 산업국가에서 노동을 통한 생존권 확보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많은 사람이 알바에 종사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알바노동자 또한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또 알바노동자는 무시해도 되는 ‘을’이 아니며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의 제고 및 변화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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