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돌봄노동이 남긴 고민

3기알바연대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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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넬부터안오셔도될것같아요’


매주 화, 목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한 돌봄대상자로부터 온 한 통의 문자. 외롭다고 매일 와달라고 하시던 분이 이틀만에 왜 마음을 바꾸신걸까. 황급히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이유를 여쭸다. 지난번에 와서 같이 집을 치워준 덕분에 앞으로는 청소 잘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그 분과는 종료되었다. 마침 이 분의 문자가 왔을 때, 나는 다른 서비스 신청자 집에 방문해서 돌봄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던 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앞치마를 풀고있는 한 여성과 먼저 마주쳤다. 요양보호사라고 했다. ‘어? 요양보호서비스를 받고 있으면 우리 돌봄서비스는 신청이 안 되는데?’ 알고보니 서비스를 신청하신 분이 요양보호사가 맘에 들지 않아 나를 부른 거였다. 몸이 불편해서 간단한 운동이라도 요양보호사가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안 알려준다면서 말이다. 그럼 요양보호사분은 어떻게 되는거냐고 했더니 ‘센터에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우리 서비스는 최대 주 2회라고 설명드리며 운동처방은 서비스에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그 분은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기로 했고 나는 돌봄 서비스 매칭에 실패했다.


이런 경우 재가요양보호사는 어떻게 되는걸까. 책 <돌봄이 돌보는 세계>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이용자가 요양보호사를 교체하는 데는 특정한 사유나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센터장에게 교체를 요청하는 전화 한 통, 요양보호사에게는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라는 말 한마디면 된다. 이 경우 요양보호사는 하루아침에,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일거리와 임금이 끊긴다. 센터장이 다른 이용자를 연결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지만, 이 기간이 근로기준법상 평균임금의 70% 이상이 지급돼야 하는 ’휴업‘으로 처리되지 않는 게 업계 관행이다.’

 

재가요양보호사 대부분은 센터와 계약할 때 시급만 명시된 소위 zero hour, 0시간 계약을 한다고 했다. 만약 신청자가 우리 돌봄 서비스를 받겠다고 했다면, 누군가의 일자리가 한 순간에 사라질 뻔 했다. 문자나 전화 한 통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다만, 재가요양보호사와 나의 처지는 조금 달랐다. 나는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로 주15시간의 소정근로시간과 기본급, 교통비가 명시된 근로계약서가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센터에서 작성 후 교부해줬다. 문자 한 통에 일거리가 사라졌지만 월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대신 일거리가 없어진 나 때문에 서둘러 다른 서비스 신청자를 매칭하기 위해 담당 사회복지사가 바빠졌다. 어쨌거나 임금은 주기로 되어있으니, 나를 마냥 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어 화, 목요일은 다른 이용자들로 채워졌다. 일하러 가는 길은 추웠지만 주15시간 근무와 임금이 약속된 근로계약서 덕분에 따듯하고 든든한 느낌이었다.


매일 3시간씩 주로 여성노인들을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휴대폰 사용법을 알려주고 집안 청소 및 정리정돈 등을 하며 받은 월급은 세전 835,152원이었다. 기본급 645,960원, 주휴수당 129,192원, 교통비 6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이 액수를 들은 엄마는 ‘반찬값은 되겠네.’라고 했다. 이 ‘반찬값’에 주휴수당 약 13만원이 더없이 소중했다. 만약 센터에서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14시간이나 14시간 30분 계약을 했더라면 꽤 슬펐을 것이다. 든든했던 돌봄 일자리는 12월 31일자를 끝으로 계약이 종료됐다. 지금은 다른 일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다. 도서관 주말근로자 모집 공고에는 토, 일 각 7시간 총 14시간 근무라고 되어있다. 구내 체육센터 안내데스크 일자리는 평일 3시간씩 주5일인데 하루는 2.5시간만 일하도록 조정한다고 한다. 주말은 토, 일 각 7시간, 1명씩을 채용한다. 주휴수당 뿐만 아니라 연차조차 없는 일자리인 셈이다. 학교 안전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가 아닌 ‘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에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 노동이 아니라 ‘봉사’기 때문이다. 이쯤되니 ‘내가 한 4개월 계약직 일자리가 보기 드물게 괜찮은 일자리였나’란 생각이 든다. 1시간, 아니 30분 차이로 10만원 가량의 임금과 휴가가 왔다갔다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운동을 함께했다. 1만원은 당시 최저임금에 2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10년 후, 시급은 1만원에 가까워졌는데 노동은 더욱 쪼개지고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심지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공공부문에서 주휴수당 마저 주지 않으려는 쩨쩨한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10년 동안 최저시급이 올랐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월급 빼고 다 올랐다고 말한다. 요즘 마트 진열대 앞에서 물건을 들었다 놨다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이는 게 착시는 아닐 것이다. 나도 한 푼이라도 더 많이주는 일자리는 어딜까 이리저리 비교하느라 눈이 바쁘다. 초단시간 노동 증가, 사실상 임금 외에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위한 구호와 운동은 무엇일까. 일자리를 찾느라 바쁜 마음 한켠에 새로운 고민이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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